인간극장 ‘잘했군 잘했어 순희 애기씨’, 11살 연하 남편과 치매 어머니의 눈물겹고 아름다운 동행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세상에 이보다 더 따뜻하고 다정한 주문이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마법의 주문을 외는 딸이 있습니다. 마치 응석받이 어린아이를 대하듯, 엄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보내는 그녀. KBS 인간극장 ‘잘했군 잘했어, 순희 애기씨’ 편의 주인공, 충남 예산에서 10년 차 치매를 앓는 어머니 현순희(84) 씨를 돌보는 딸 황은옥(63) 씨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랑은 더욱 선명해지는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치매’라는 무겁고 서글픈 단어 앞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11살 연하 남편 노윤호(52) 씨와 함께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 은옥 씨. 이들의 하루는 고되지만, 그 속에는 세상 가장 빛나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철부지 딸’의 귀촌,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한 약속
평생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 현순희 씨.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해 슈퍼마켓으로, 다시 식당으로… 쉴 틈 없이 일하며 억척같이 가족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제야 좀 편안히 사실 수 있나 싶던 그 순간, 청천벽력처럼 치매라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조각나 흩어졌고, 평생의 동반자였던 남편마저 혈액암으로 아내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귀하게 자라 철없던 딸이었던 은옥 씨에게 어머니의 치매와 아버지의 부재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롯이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고 하나 없는 충남 예산으로 귀촌을 결심합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엄마를 모시려면 부처가 돼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죠.
도시에서의 삶,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직 엄마를 위해 시골로 내려온 딸. 그녀의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남은 시간을 가장 따뜻하고 평온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은 딸의 애틋한 진심이었습니다.
11살 나이 차를 극복한 사랑, 묵묵히 장모님 곁을 지키는 ‘츤데레 사위’
은옥 씨의 힘든 결심 곁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노윤호(52) 씨가 있었습니다. 잘나가던 일식 요리사였던 그는 아내의 결정을 존중하고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경력마저 뒤로했습니다. 낯선 시골 마을 예산에서 그는 택배 기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기꺼이 장모님을 모시는 사위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은옥 씨가 이혼 후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한정식집에서 일할 당시, 직원으로 들어온 윤호 씨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11살 연하’라는 나이 차이는 어머니 순희 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은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였고, 세상 가장 든든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윤호 씨는 그런 장모님을 향한 마음이 각별합니다. 치매로 인해 때로는 소통이 어렵고 돌발 행동을 하시는 장모님과의 일상이 고될 법도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 퇴근길에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간식거리를 사 들고 오는 ‘츤데레’ 사위입니다. 말수는 적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장모님을 향한 깊은 존경과 애정이 묻어납니다. 그의 묵묵한 헌신은 아내 은옥 씨가 지치지 않고 어머니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잘했군 잘했어!” 기억을 잃은 엄마와 철들어 가는 딸의 마법 주문
치매 간병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습니다. 은옥 씨 역시 처음부터 ‘부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고를 친 고양이를 금세 잊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엄마, 불안감에 집 안의 문이란 문은 모조리 걸어 잠그는 엄마를 보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은옥 씨는 깨달았습니다. 엄마를 바꾸려 하거나, 지나간 기억을 되찾으려 애쓰는 것은 모두에게 상처가 될 뿐이라는 것을요. 대신, 그녀는 ‘지금의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엄마를 새로 키우듯, 모든 것을 긍정과 칭찬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밥 다 드셨어요? 아이고 잘했네, 잘했어!”
“옷 혼자 입으셨네? 우리 순희 애기씨,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어”라는 칭찬은 고된 간병에 지친 딸과, 불안과 혼란 속에 있는 엄마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법 같은 주문이 되었습니다. 이 주문 속에서 순희 씨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딸 은옥 씨는 하루하루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보호자로 성장합니다.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이들의 사랑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인간극장 ‘잘했군 잘했어, 순희 애기씨’ 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치매’라는 병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님 앞에서 좌절하고 힘들어하기보다, 은옥 씨 가족처럼 사랑과 긍정으로 그 시간을 채워나갈 수는 없을까요?
어머니의 흩어지는 기억 조각들을 사랑으로 그러모아 따뜻한 오늘의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딸과 사위.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은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합니다. 비록 기억은 희미해질지라도, 가슴에 새겨진 사랑의 온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 가족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